'어차피’ 온전한 이해는 불가능함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에게 손을 내밉니다
‘여성영화’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으로 영화축제를 만들어 온 지 10년이 흘렀습니다.
10년 동안 인천여성영화제는 한 해도 쉬지 않고 관객들을 만났고, 영화를 통해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인천여성영화제에서 만나는 여성영화는 ‘여성의 눈으로’ 나와 세상, 관계를 바라보게 했고, 그렇게 다른 시선은 다른 목소리를 만나게 했습니다.
여성영화를 통해 나를 성찰하고 세상과 만나고,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을 꿈꿔보고자 했지만, 2015년 ‘지금, 여기’를 둘러보자면 솔직히 참담한 마음이 더 큽니다. 개인을 지켜줄 국가는 더 이상 없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한 1년이었습니다. 나와 다른 존재, 약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더욱 노골적이고도 극렬해졌습니다. 더 이상 진정한 대화는, 소통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2015년. 대한민국. 인천.
10년 동안 다름을 드러내고 자신을 발언하며, 서로가 다르지만 어울려 살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한 대화를 시도해 온 인천여성영화제가 지금 이 시대, 대한민국의 인천이란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누군가 말했습니다. 지금은 ‘그래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할 때라고. 인천여성영화제 역시 소통불가능의 시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귀를 열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말하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나와 다른 이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를 열고 눈을 열어 대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래서 11회 인천여성영화제는 행사의 번듯한 모양새보다는 영화를 통한 대화와 교감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우리 각자가 얼마나 다른 곳에 서 있는지 확인하는 것, 서로를 잘 몰랐음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을 내밀어 서로의 마음을 다독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현정 | 2014 | 16′5″| 다큐멘터리
2015년 7월 9일 (목) 오후7시 영화공간주안 컬쳐팩토리
11회 인천여성영화제의 개막작 <편지>는 바로 ‘어차피’ 이해 불가능한 너와 나 사이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할 수 있는 이유를 찾게 하는 단편 다큐멘터리이다.
2007년, 19세 베트남 아내 후인 마이가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가 7년이 지나 한국어로 읽힌다. 베트남 여성이 베트남어로 마이의 편지를 낭독하고 뒤이어 한국 여성이 한국어로 마이의 편지를 낭독한다.
편지가 쓰인 시간과 낭독한 시간의 차이, 베트남어로 낭독한 시간과 한국어로 낭독한 시간의 차이, 그리고 언어의 차이. 이 모든 차이들은 수신불가능, 소통불가능을 낳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름 안에서도 공감은 가능하다. 이 모든 이야기를 짧고 간결하지만 강렬한 영상에 담아냈다.
*영화 상영 후 감독 및 출연자가 함께 하는 관객과의 대화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