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04
첫번째 제작지원 지원작들의 응원릴레이...
세번째 '대한문에서 만나'팀에서 보내온 글입니다.
"현카 지원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고민안해도 되는건데…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
작은 도움을 큰 압박으로 느끼는 이런 제작지원.
아주 좋지요? ㅎ
(재수읍는 과장)
쌍용차 해고자들이 목숨을 잃은 동료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대한문 분향소는 내가 처음 카메라를 들고 만난 ‘현장’이었다. 그 현장에는 내 카메라가 오기 이전부터 현장을 기록하던 카메라들이 있었다. 현장경험이 처음인 나에게 먼저 와있던 이들은 큰 힘이 되어주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이들과 ‘대한문에서 만나’ 영상팀을 만들게 되었고, 조금더 능동적으로 현장에서 카메라가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보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아주 초보적인 수준이었지만 말이다.)
그 와중에 현카 제작지원 소식을 듣고는 우리도 지원해보기로 했다. 음… 큰 포부가 있었다. 지원금을 받으면 대한문을 배경으로 악덕한 만행을 저지르던 당시 남대문서 경비과장 최성영을 주인공으로 한 멋진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대한문 상황을 급격히 나빠졌고, 우리 카메라들은 매일같이 벌어지는 전쟁같은 현장을 기록하기에 바빴다. 우리의 영상은 인권보고서가 되기도 했고, 재판에 증거물이 되기도 했다. 완성해야된다는 압박에 비해 제작 속도는 더뎌 고민에 고민만을 거듭했다. 혼자가 아니어서 좋은점도 많지만 팀이어서 문제가 되는 상황도 빚어졌다. 고민을 하다가 마감을 코앞에 두고는 태준식 감독님께 손을 내밀었고 선뜻 부족한 우리들의 고민을 받아주셔서 <대한문을 지켜라>가 이렇게나마 완성될 수 있었다.
부족하지만 <대한문을 지켜라>가 소중한 이유는 ‘대한문에서 만나’ 영상팀이 자발적으로 기획한 첫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현장에 있다보면 벌어지는 상황들이 버거워서, 그리고 조금은 게을러서 요구받는 작업들 이상의 또다른 것들을 중간중간에 해낸다는 것이 쉽지가 않았다. 솔직히 말해 마감일은 다가오고 작업방향은 잡히지 않을 때, 현카 지원만 아니었으면 이렇게 고민안해도 되는건데…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카 제작지원 시상을 받던 모란공원에서 느꼈던 따스함과 책임감은 이 모든 것을 쉽게 손놓을 수 없게 했다.
스스로의 삶을 지켜내는 것도 너무나 버거운 현실속에서 카메라로 현장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그리고 내가 선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는 요즘이다. 현장에 있는 한 영원히 할 수밖에 없는 고민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참 행운아라고 생각한다. 첫 현장에서 ‘대한문 영상팀’이라는 소중한 동료들을 얻었고, 현카 제작지원이라는 따뜻한 사랑과 무거운 책임감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이 행운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가 닿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을 수 있는 힘이 조금 더 단단하게 뿌리내렸으면 좋겠다.
아, 혹시나 궁금해하실까봐. ‘대한문에서 만나’ 영상팀은 아직 건재해요!
2014/11/02
첫번째 제작지원 사업 지원 프로젝트였던 '밀양송전탑 반대를 위한 미디어팀'에서 두번째 제작지원 사업을 응원하기 위한 소중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이 활동을 기반으로 '밀양전' 과 '밀양아리랑' 만드신 박배일씨의 글입니다.
카메라가 현장을 지킨다라는 것.
이 찐빵 같은 말에 앙꼬를 넣어주셨습니다.
과연!! 너무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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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이후 밀양은 전쟁과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다. 7년 동안 765kV 송전탑을 막기 위해 밀양 주민들은 나무를 잡고 울부짓었다. 하지만 시민과 언론은 관심이 없었다. 그 사이 한전과 공사 인부들은 주민들을 개 취급하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공사를 위한 벌목을 하고 있었다. 밀양 투쟁이 세상에 알려진 건 2012년 1월 16일 이치우 어르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부터였다. 이후 난 어떤 분노와 죄스러움에 휩싸여 카메라를 들고 밀양으로 향했다. 2012년 6월, 밀양 765kV 송전탑을 막기 위한 미디어팀이 만들어졌다. 2012년 7월에서 9월, 2013년 5월에 송전탑 공사를 막기 위해 큰 충돌이 있었다. 그 현장을 지키고 있던 우리들의 카메라는 나름 큰 역할을 했다. 속보를 통해 밀양 상황을 알렸고, 연대를 호소하는 영상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국가폭력으로부터 주민들을 일정정도 보호했다.
2013년 5월 열흘 간의 전쟁이 끝나고, 40일 동안의 전문가협의체 논의가 파행으로 마무리 되면서 밀양엔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그림자가 진하게 드리웠다. 경찰은 밀양 근처에서 공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숙소를 잡고 대대적인 훈련에 들어갔고, 한전은 공사부지에 진입하기 위해 산을 휘저었다. 전방위적으로 공사가 진행된다는 소식을 듣고 주민들뿐만 아니라 미디어팀도 긴장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 더 많은 카메라가 필요했다. 더 빠르게 속보를 만들기 위해선 안정적인 센터 구축이 필요했다. 다행히 주민들이 투쟁을 열정적으로 한 덕에 연대하려는 카메라는 많았지만 그들을 현장으로 배치하기 위한 비용과 센터를 운영하기 위한 비용이 부족했다. 그때!!!!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 제작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은 무더운 여름 단비였다. 다행히 10월이 오기 전에 제작지원에 선정 되었고, 70명이 넘는 활동가들이 현장을 찾아 주민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제작지원을 통해 얻은 센터에서 <밀양전>을 만들었고 <밀양 아리랑>도 이어 갈 수 있었다. 무엇보다 미디어 활동가들이 만든 속보와 영상을 보고 수많은 연대자들이 밀양에 연대했다.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이 다시한번 현장을 지켜가고 있는 카메라에게 힘을 주기 위해 제작지원 프로젝트를 실시한다고 한다. 이번엔 더 많은 이들이 현장에 힘을 싣길 기원하며 펀딩을 진행한다고 하니!!!!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 프로젝트에 힘을 주기 위해, 무엇보다 수많은 현장에서 불철주야 카메라로 연대하는 활동가들에게 힘을 전하기 위해 후원하러 고고씽~~~^0^
2014/10/25
'현장을 지키는 카메라에게 힘을'의 첫번째 제작지원을 디딤돌 삼아 좋은 작품으로 돌아온 김수목씨가 소셜펀지를 응원하기 위한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니가 필요해'는 요 근래 나온 다큐멘터리중 가장 '촉촉한 로맨스다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김수목씨의 기를 받아 모금활동도 열심이 내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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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카 제작지원을 받은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나에게는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은 마석 모란공원에서 제작지원 소감을 밝히며 펑펑 울었던 날이다
민망하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따뜻한 배려와 우리의 마음을 알아준 그 마음들이 너무 고마워서
그렇게 울었던 것 같다. 모란공원 김천석, 이상현 두 동지 앞의 잔디는 그런 자리다.
현카 제작지원은 마음으로 받은 지원이었다.
어느 제작지원에서도 느끼지 못할 먹먹하고 따뜻한 책임감이 생긴다
나의 게으름도 한몫을 했지만 투쟁의 여러 상황과 맞물려 나는 한동안 편집을 할 수 없었다
현카의 지원을 시작으로 여러 사람들의 격려와 지지를 마음에 담고 결국 영화를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투쟁 현장에 있었을 때 참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고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
나를 믿고 카메라에 담겨주는 그들이 있어서...
오히려 내가 잘 먹고 다니나 신경써주고 나의 존재만으로 힘이 될 수 있는 곳,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곳, 그곳이 현장이었다.
아마 단언할 수는 없어도 현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마음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어도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닐까..
돈을 벌기 위해 현장을 가지 못할 때, 괜시리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발걸음이 무거워질 때... 그럴 때 현카 지원은 정말 말그대로 현장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작지만 큰 힘이 된다. 그 힘이 흩어지지 않기 위해 <니가 필요해>요... (막간 영화홍보 흐흐)
지금도 알려지지 않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현장에서 때로는 힘들게 때로는 행복하게 카메라를 들고 있을 누군가들에게 현카의 제작지원 소식이 나처럼 큰 힘이 되었으면 한다.
- 김수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