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 자체가 선언인 우리, 사람의 이야기
세상에, 사람으로 살다
세상에,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니!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세상입니다. 살 집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해야 하고,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다가 ‘폭도’로 몰려 이 세상을 뜨는 동료들을 바라봐야 하며, 전쟁에 반대하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自然)을 지키고자 하는 종교인들이 경찰에 모욕당하고 잡혀가는 세상입니다. 일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불안정한 비정규직 노동이 보편적인 노동 형태가 되면서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또 끊임없이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자신을 상품화해야 하고 일자리 앞에서 굽실거리는 비루함을 감내해야 합니다.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비정상’이 되고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하며 때로는 폭력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피부색이 다르고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졌다는 이유로 차별과 멸시의 대상이 되고 무시당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기도 합니다. 이 사회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경쟁 관계로 내몰고, 살아남으려면 온갖 구차함과 비굴함을 참아내라고 강요합니다. 인간다운 생활이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한 생존이 목표가 되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사람으로 살다
이런 세상에서, 이런 세상일지라도 우리는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때로는 생존을 위협당하고 그보다 더 자주 자존감에 상처를 입지만 사람으로 살아내고자 합니다. 나의 권리를 침해하는 권력에 맞서고 나를 차별하는 모든 것에 당당하게 저항하고자 합니다. 아니, 억압, 차별, 권리…이런 말을 쓰지 않더라도 우리의 존재 자체가 저항의 근거가 되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사람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이 험한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아내는 것, 그 모두에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올해 서울인권영화제는 청계광장에서 진행됩니다. 벌써 5년 째 거리에서 영화제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화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영비법)’은 영상물등급분류심의위원회로부터 사전에 상영등급분류심의를 받든가 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을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인권영화제는 이러한 사전 상영등급분류심의나, 행정기관의 추천을 받아야만 하는 상영등급분류 면제 추천 역시 일종의 사전검열이라고 생각하고 거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영화관에서도 영화제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신 5년 째 거리에서 관객들과 인권영화로 만나고 있습니다. 돈이 없더라도 누구나 인권영화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무료상영 원칙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합니다. 사전검열을 거부했던 최초의 영화제, 인권영화 상영만으로 국가보안법의 희생양이 되었던 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는 거리 상영으로 이러한 표현의 자유 원칙을 지켜가고 있습니다.
영화제를 거리에서 진행하는 것이 매우 힘들고 또 돈이 많이 드는 일이기도 하지만, 열린 공간에서 인권영화로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인권영화제 현장은 때로는 집회 같기도 하고, 때로는 축제 같기도 합니다. 내년 서울인권영화제의 조직 독립을 앞두고,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올해 여러분과 함께 청계광장에서 인권영화제의 공간을 만들어가고자 합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세상에서, 사람으로 살고 있음을 서로 확인하고 선언하는 이곳에서 인권영화를 아껴주시고 인권영화제를 지켜주신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드리며.
17회 서울인권영화제를 준비하는 인권활동가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