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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에 대한 무관심과 구조적 원인을 고찰하는 뮤비. 정부의 정책과 자살 문화를 비스듬히 바라보며 좀 더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개인의 몫에 대해 사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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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원함에 대하여
거절할 수 없는 고백
한국에서 40분에 한 명씩 자살한다.
<프로젝트 소개>
이 프로젝트는 힙합 뮤지션 “시원한 형”의 싱글 <고백>의 뮤직비디오를 영상아티스트 "THINK/ing"과 함께 제작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고백은 자살 공화국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최우선 적이고 중요한 과제이지만 터부시 된 “자살”이 소제다. 음악 안에 화자가 절망의 끝에서 느꼈던 날카로운 감정이 고스란히 담겨 사회적 금기에 균열을 일으키고 있다. 음악 안에다 미처 담지 못한 ‘자살에 대한 무관심’과 ‘자살의 구조적 원인’에 대해서 영상에 담아 이 곡을 온전하게 완성하고자한다.
이 작품으로 인해 정부의 빈곤한 철학과 실효성이 부족한 정책, 사회의 책임, 자살에 내몰린 당사자를 비난하는 뒤틀린 자살 문화를 비스듬히 바라보며 좀 더 살만한 사회를 만드는 개인의 몫에 대해 사유하려 한다
<기획의도>
세상은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 한다.
세상은 자살에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 한다. 한국에서 40분마다 한 명이, 하루 평균 34명이 자살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살에 대해 생각하고 우울한 생각에 빠지는 것은 분명 개인의 정서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감정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없고 절망감과 우울함에 가득찬 수많은 이들을 그대로 두는 것은 방관이자 사회의 직무유기다. 금기와 배제는 우리에게 당면한 이 거대한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 없기에 이 어려운 작업을 조심스럽게 시작한다.
자살문화
1.흔히 자살과 관련된 이야기가 오가는 상황을 보면 대부분 애꿎게도 자살한 사람을 비난하고 우울한 감정을 배제하려 한다. 이 모든 환영 받지 못하는 이야기들에 대해 침묵하라며 말이다. 난 이것을 자본주의, 근대적 사회에서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배제한 결과로 해석한다. 비약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거칠게 정리하면 기업(조직)에 입장에서 우울한 감정은 매출(성과)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언제나 친절한 종업원, 야근과 갈굼에도 긍정적인 부하직원, 언제나 성과를 위해 열정적인 상사를 생각하면 이해가 간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생명에 대한 존엄을 이유로 자살을 죄악시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의도와는 다르게 대상에게 부정적인 영향과 죄의식을 주게 되고 그들은 결국 고립되고 만다. 관계의 단절이 무엇을 낳을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이런 미성숙한 사람들이 가진 생각과 행동, 말 등은 자살문화를 형성하고 이는 자살에 더욱 생명을 부여한다.
2.이 현상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지표를 노력 여하에 따른 결과로 여기는 이데올로기와 수능으로 대표되는 경쟁과 서열화 위주의교육시스템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사유를 가로 막고 인간을 착취하고 차별하는, 결국 우울하고 고립되게 하는 여러 구조적인 원인들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유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시스템에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가 되고,
이는 자살문화를 재생산한다.
3.국가에서 자살을 접근하는 방식은 철저히 피상적이다. 자살 포스터나 표어, 다리 난간 높이기 등의 예만 봐도 알 수 있다. 여러 논문에서도 지적되듯이 국가의 정책은 사회경제적요인의 중요성에 대한 고려가 미흡. 정신의학적측면에만 중점을 두었다. ‘병에 걸리면 치료를 한다’는 차원에서만 접근을 하지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든다.’ 라는 좀 더 근본적인 접근에 미치지 못한다. 풀어 말하자면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을 죽지 못하게 하는 사회’가 아닌
‘정말 살고 싶은 사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적 책임
감정은 개인의 것이지만 동시에 구조적이다. 개인의 심리, 유전, 관계 등의 영향만이 아닌 시대적 배경과 사회의 정치, 경제, 등의 여러 요소가 개인의 감정을 좌우하게 된다. 예를 들어 (물론 다른 여러 변인들도 존재하겠지만) 영국의 비오는 날씨와 동남아의 무더운 날씨의 사람들은 정서가 크게 다르다. 또 2차 세계대전 유태인들, 일제 강점기 혹은 현재 시리아 등지에 있는 난민들의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한국사회는 무엇이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까. 빠른 시간동안 성장만을 강요당한 무한경쟁사회에서 빠른 발전을 얻은 만큼 잃게 된 것들이 너무 많다.
언급했던 극단적인 경쟁 뿐 만아니라 성소수자나 여성에 대한 혐오와 차별,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의 불안정함과 양극화, 외모지상주의 사회, 관계의 단절, 등등 수많은 구조적 원인이 존재한다. 이런 수많은 근본적 문제들이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익숙하기에 당연한 줄만 안다. 하지만 익숙한 것과 올바른 것은 다른 것이다.이제 당연하다 여겨지는 부조리함의 안대를 벗기고 그 앞에 아주 오래된 명제를 꺼내놓자.
“모든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다.”
이 작업의 역할과 책임
이 곡이 발표 된지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의 곡을 들었던 이들 중 상당수가 이 곡에 공감을 했고 날카로운 감정의 표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위로’를 느꼈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는 최근에 우울증에 대해서 표면으로 드러내는 문화가 조금씩 확산되고 자조 모임 등을 형성하는 사례가 늘어나는 것과도 궤를 같이한다. 그렇기에 이 곡 또한 그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희망을 가지고 작업에 임한다.
이 작업의 역할은 요컨대 첫째로, 이 음악은 우울하고 또 그렇기에 고립되어 있는 이들에게, 그들의 감정을 공감/이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일종의 “정서적 지지”를 제공할 것이다.
둘째로 우울함의 원인이 개인의 탓이 아닌 사회 구조의 문제에서 왔음을 암시함으로써 개인의 자존감을 회복시키고 자신의 상황을 객관화해서 볼 수 있는 시야를 제공 할 것이다.
물론 음악과 영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중요한 건 이걸 접하는 당사자의 의지이자 많은 이들의 타인에 대한, 사회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다.
거기에 대해서 내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또 뮤지션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바로 이 작업이다. 나의 의자와 소망이 누군가에게 닿길 원한다.
그럼에도 이 곡의 발표했을 때 혹은 앞으로 뮤비의 유포를 통해 가장 우려되고 걱정스러운 지점은 이 곡을 듣고 누군가가 더욱 우울한 감정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매스컴에서 말하는 ‘베르테르’ 효과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난 이 작업이 굉장히 조심스럽다. 그럼에도 나 역시 이 수렁에 깊이 빠져있던 사람으로서 그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기에 이렇게 용기를 내서 손을 내미려고 한다. 주제의 특성상 기획과 제작 모든 과정에서 섬세함과 애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것을 놓지 않을 것이다.
<의미와 기대효과>
‘자살 위험자’에서 그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뮤지션이자 조력자로
나는 오랜 시간 동안 자살하고 싶어 했던 속칭 ‘자살 고위험군’이었다. 후에 알게 되었지만 그건 여러 구조적인 원인에 의한 것 이였다. 그러다가 음악을 통한 감정표출과 사회구조에 대한 사유를 통해 그리고 무엇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될 수 있을 거라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으로 그것을 넘어섰다. 그래서 이 음악을 만들 당시 절망 속에서 가졌던 의문에 스스로 답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야 누군가는 또 다른 불행을 만들기를 멈추겠지.
그래야 누군가는 또 다른 불행을 멈추는 길을 만들겠지
그게 나일지, 장담할 수 없지 간단하지 않기에 지금 내 삶조차
감당 할 수 없지 꿈 안에 쓰러져 절망을 수놓지
그걸 막을 수 없지
고백 -中-
자살의 방지책, 즉 살만한 세상을 만드는 것은 TV에서 무책임 하게 떠드는 것처럼 개인의 마음먹은 것에 달린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의 해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답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려한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앨범의 중심적인 트랙
<살아가는가?>발표 후 경제적 위기로 음악 작업이 힘들었고 일이나 사회생활도 힘들었다. 이번 앨범은 그때 느꼈던 온전한 감정들을 담았고 그렇기에 전체적인 앨범의 색깔이 우울하고 무거워졌다. 사회에 주류의 정서에 맞춰서 앨범의 색을 바꾸고 내 감정을 통제하고 싶진 않았다. 앨범의 색은 이 사회 구조 안에서 살아온 나의 삶에 의해 자연히 그렇게 된 것이기에 예술의 본래 의미처럼 그걸 온전히 드러내려 하고 그 진실함이 진정한 가치를 가져오고 세상의 의미를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게다가 이 트랙은 앨범의 중심적인 트랙으로써 전체적인 흐름과 주제를 보여줄 때 중요한 곡이고 음악만으로는 표현하지 못한 부분이 있기에 꼭 뮤비를 통해 완성하려 한다.
새로운 차원의 힙합음악을 통한 새로운 미학적인 기준의 정립
쇼미더머니와 고등래퍼로 대표되는한국힙합 씬(scene). 서바이벌과 오디션의 홍수 속에 투표를 위해 자극적이고 현란한 음악만이 양산되고 시간이 지나면 대다수가 사라져 버린다. 유행에 편중된 음악도 문제지만 내용이 없고 무책임한 것이 가장 큰 맹점이다. 창작자들의 시야는 굉장히 한정되어 있고 대부분의 가사는 자기자랑, 성공, 부모, 돈, 사랑 등에 매몰되었다.
너도나도 자신의 컨텐츠를 홍보할 때 하나의 클리셰처럼 새로운 차원의 음악이라 말하곤 한다. 내 손으로 이 문장을 써야 하는 게 안타깝지만 내 음악은 정말 새로운 차원을 여는 측면이 있다.
싱글 고백(앨범)은 나의 내면에서 출발하여 이 사회의 자살(여러)문제들에 대한 사유 하게하며 우리가 살면서 맞닥 드리는 거대한 문제를 외면하지 않게 물음을 던진다. 이것은 편향된 씬에 다양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화 된 예술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줌으로써 대중들과 창작자들에게 성숙과 새로운 시야를 줄 수 있다.
자살문화에 대한 새로운 담론형성과 사유촉진
자살에 대한 무관심과 자살에 대한 경각심을 넘어 자살혐오를 하는 지금의 세태를 돌아보게 한다. 무엇보다도 자살한 당사자를 비난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발생하게 된 구조적인 원인을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 할 수 있다. 물론 독서나 연구 토론과 사유 등으로 그런 관점을 가질 수 있지만 현대인들에게는 시간과 여유가 부족하고 쏟아지는 컨텐츠 속에 파묻혀 중요한 가치와 질문들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 예술은 감각적인 음악과 영상의 협업을 통해 인간에게 꼭 필요한 사유와의 만남과의 접근성을 낮춰주고이것을 통해 주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는 담론을 형성하게 해줄 것이다.
춤추는 제자리표
춤추는 제자리표는 좋아하는 것(예술)을 통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운동), 우리의 삶을 지속 가능하게 하려는(일) 문화예술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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