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역 언론인 <티엔티 뉴스>와 인터뷰했던 기사가 올라왔네요. 이 날 정말정말 더워서 냉명 먹으면서 인터뷰를 했었답니다.
"부서지는 학생들" 이야기 기록하는 원해수 감독의 인터뷰 기사 읽어보세요 >ㅅ<
기사원문: http://www.tntnews.co.kr/news/view.html?section=109&no=3231
'부서지는 학생들' 이야기 기록하는 청년
박은영 기자 ellyonelly@gmail.com
햇볕이 찌를 듯 따가운 여름 날, 대구 남구 대명동에 위치한 작업실에서 ‘기록하는 사람’ 독립다큐 감독 원해수(33)씨를 마주했다.
원 감독은 2003년 한 동성애자가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단편극영화 ‘My Name is 말로’를 시작으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과 장애인 등 우리사회의 ‘소수자’로 불리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쟁점을 다룬 독립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
원 감독은 독립다큐를 “비디오 카메라로 시간과 공간, 사람을 기록하는 일련의 작업”이라고 소개했다.
1년6개월여 전만 해도 원 감독에게 ‘대구’는 낯선 도시였다. 서울토박이인 원 감독이 아무 연고도 없는 대구 땅을 밟은 것은 지난 2011년 2월. 매서운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던 어느 겨울날이었다.
장애인 문제 등을 중심으로 독립다큐를 만들어온 원 감독은 여러 걱정거리가 겹치면서 독립다큐 일을 계속할 지 고민했다. 적당한 회사가 있으면 고된 생활을 접고 봉급쟁이 생활을 할 생각도 했다.
고민하던 원 감독에게 대구지역의 한 장애인 단체가 대구에 살면서 지역에서 기록하는 일을 해주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을 받고 나니 원 감독을 괴롭히던 고민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망설임 없이 대구행을 결정했다.
원 감독이 대구에 내려오기 2개월여 전인 2011년 12월20일, 또다시 대구를 '사고 도시'로 낙인찍는 사건이 일어났다. 중학교 2학년 권모(사망 당시 14세)군이 또래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충격적인 내용의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구시 교육청은 학교폭력과 청소년자살 방지 대책을 연일 쏟아냈다. 하지만 지난 6월2일 고등학교 1학년 김모(16)군이 친구들에게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등 대구.경북지역에서는 권군의 죽음 이후 최근 6개월여 동안 10명의 청소년이 자살을 기도해 그 가운데 8명이 숨졌다. 대구시교육청의 대책이 탁상공론에 그치면서 청소년들의 '자살 행렬'이 마치 전염병처럼 번졌다.
'자살 도미노'였다. 하나가 무너지고 또 하나가 무너지다 마침내 모두 무너져 내리지나 않을까 하는 공포심이 대구 사회에 짙게 드리워졌다. 2012년 여름, '학교폭력'과 '청소년 자살'의 먹구름이 깔린 대구에서 원 감독은 학교 폭력을 다룬 독립다큐멘터리 '학교 - 부서지는 사람들'을 기록하고 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게 '독립 다큐멘터리'"
'독립'이란 접두어가 붙은 문화산업에선 왠지 치열함과 함께 궁핍이 느껴진다. 독립영화, 독립다큐멘터리…그 환경은 매우 척박하다. 원 감독은 "독립다큐 제작에 처음 뛰어들었던 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힘든 것은 사실"이라며 웃었다. 하지만 원 감독은 "맨손으로 독립다큐 제작에 뛰어들었던 그 때나 지금이나 손에 들어오는 수입은 비슷하지만 몸과 마음은 훨씬 편안해졌다"고 말했다.
원 감독은 독립다큐란 장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카메라에 담아왔다. 원 감독이 독립다큐 제작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원 감독은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졸업이지만 이곳 저곳에서 배운 게 많아 가방끈이 좀 긴 편"이라며 "여러가지를 배우는 과정에서 나와 극 영화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원 감독은 한 공공영상미디어센터에서 운영하는 독립다큐 제작과정을 거치면서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에 관한 기술적인 소양을 쌓았다. 독립다큐 제작과정을 수료한 뒤 한동안 독립다큐멘터리 제작집단인 '다큐 인'에 들어가 활동했다.
원 감독은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극 영화와 다른 독특한 감수성의 차이를 알게 됐고 사물을 바라보는 본질적인 태도를 고민하게 됐다"며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그 태도가 견고해 진 것 같다"고 했다. 원 감독은 "하지만 즐겨보는 영화 장르는 지극히 상업적인 것들"이라며 "언젠가는 상업적인 극 영화를 찍거나 찍을 기회가 생길 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다큐멘터리에 충실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저는 '기록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기록의 주체이자 당사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주류가 정해놓은 틀이나 영역 밖으로 나가면 '소수자'로서 차별과 억압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원 감독은 "카메라를 통해 누군가를 기록하면서 내가 그 사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나 역시 소수자고 소수자로서 스스로를 대변하며 기록한다"고 했다. '비(非)소수자'의 입장에서 '소수자'를 위해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는 얘기다.
원해수 감독이 모두와 함께 그리는 '부서지는 사람들의 이야기'
최근 원해수 감독이 공들여 준비하는 것은 독립다큐멘터리 '학교 - 부서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하 학교)다. 원 감독이 제작하고 있는 독립다큐 '학교'는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시각을 개인이 아닌 사회구조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시도다.
원 감독은 대구에 내려온 직후인 2012년 2월경 대구지역의 한 시민사회단체로부터 학교폭력에 관한 영상물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았다. 여러 사정으로 그 단체의 금전적인 지원을 받아 영상물을 만들기는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그는 "자료를 그러모으고 청소년들을 만나 사전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점차 '학교'라는 공간 자체에 주목하게 됐다"고 말했다.
원 감독의 '학교'에 눈길이 가는 것은 대구의 현재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포털에 서 '대구'를 검색하면 '대구 자살'이 연관검색어로 뜬다. '학교폭력'과 잇따른 '청소년 자살'로 그 어느 때보다 주목받고 있는 대구에서 학교폭력에 관한 독립다큐를 제작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없을까.
원 감독은 "지난해 12월 권군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 잇따른 청소년 자살로 대구가 특별히 주목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수긍했다. 그가 가장 고민했던 점도 학교폭력이 대구라는 특정 지역의 문제로만 비쳐선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학교'의 제작과정에서 대구 청소년들 인터뷰는 진행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청소년 인권에 대한 무지, 비인권적인 학교 공간에 대한 인식 부족 등 '학교'라는 공간의 문제는 대구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대구에 너무 집중하지 않으려 했어요."
원 감독은 '학교'의 핵심은 '학교'라는 공간에서 '청소년'들이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떻게 버티고 있는 지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14일 '학교' 공식블로그 등을 통해 공개한 예고편에서는 사전인터뷰에 응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대구지부 소속 청소년 활동가들의 얼굴이 많이 비쳤다. 하만 실제 인터뷰는 청소년 인권활동가에 치중하지 않을 예정이다.
원 감독은 "대구에서 만들지만 전국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학교'가 인터뷰 중심으로 진행될 예정인 만큼 인터뷰 대상 선정에도 특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원 감독은 "대구지역에 국한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 각지의 청소년들 가운데 인터뷰 대상을 추려내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각계 전문가나 주변의 목소리도 물론 들어가지만 '학교'의 중심은 철저히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될 거에요."
'학교'는 시민 공동제작 방식으로 2013년 2월 완성할 계획이다. 지금 '학교'의 가장 큰 걸림돌은 제작비다. 40분 가량의 중편 다큐인 '학교' 제작에는 1천만 원 가량의 제작비가 필요하다.
원 감독은 고심 끝에 지난 5월 말부터 사회운동 후원 사이트인 '소셜펀치'를 통해 '학교' 제작후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총 제작비의 절반 수준인 500만 원 모금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270만원 가량의 정성이 모였다.
원 감독은 시민들의 정성에 힘 입어 "모두가 부서져가고 있는 '학교'라는 공간에 대한 오해와 착각을 구조적인 차원에서 그려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어떻게 괴롭혔는지, 가해 학생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등 개인적인 행위에 대한 내용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흐르고 있어요. 언론도 그렇고 교육당국이 내놓은 정책도 마찬가지에요."
원 감독은 "우리사회가 학교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에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폭력'과 '청소년 자살'이 일어난 배경은 무시하고 단순히 '가해 학생이 피해 학생을 괴롭혔다'는 식의 행위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가 싫다고 했다. 원 감독이 '학교'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목표는 바로 학교폭력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다.
그는 "많은 전문가들이 학교폭력의 원인과 대책을 쏟아냈지만 당사자인 청소년들이 왜 힘든지, 무엇이 힘든지를 들으려는 시도는 별로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교'를 통해 학교폭력에 노출돼 있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우리사회가 학교폭력을 바라보는 시선과 가치관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탁상을 사이에 두고 공론을 펼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는 청소년들은 부서져 간다. 학교폭력에 노출된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만이 아니라 학교폭력을 지켜보는 모든 학생들이 부서지고 교사도 부서진다. '학교'라는 부서져가는 공간에서 청소년이 부서지고 부서진 채로 사회에 발을 내딛는다.
"청소년들이 학교 안에서 힘들어 하는 목소리를 들어주는 시도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습니다. 당사자인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그저 들어주기만 해도 학교폭력에 대한 원인과 대책을 이야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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