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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 사라진 회사, 쫓겨난 사람들_ (2) 성진 씨에스

2019/10/16

[싸우는 여자들, 기록팀 또록]의

두 번째 연재입니다.

[싸우는 여자들, 기록팀 또록](이하 [또록])은 성진씨에스, 레이테크코리아, 신영프레시전 등 사업장의 폐업 상황이 여성 노동자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피는 1차 작업을 마무리중입니다. 개별 사업장의 처지와 상황을 다룬 글 한 편, 조합원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인물 서사를 다룬 글 한 편, 이렇게 사업장마다 글 두 편을 준비합니다. 전체 글을 다 보여드리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라, 두 편의 글에서 일부를 발췌해 선보이는 방식으로 연재를 진행합니다. 사업장의 고유한 상황이나 폐업/해고를 마주한 여성노동자의 경험을 둘러싼 전반적인 문제의식을 담은 글은 이후에 책이나 다른 방식으로 보실수 있을 것입니다.

[또록]의 작업은 느리고 효율성과는 거리가 멀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동안 얘기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담아보려고 고민, 또 고민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걸리고 결과물은 더딜 테지만, 끝까지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두 번째 연재도 <누가 내 직장을 옮겼을까?> 소셜펀치 후원함 게시판과 페이스북 페이지에 게시합니다앞으로 소셜펀치 모금함이 종료되는 10월 31일 전에 신영프레시젼 노동조합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질 계획입니다.

 

사라진 회사쫓겨난 사람들_(2)

성진 씨에스

 

성진 씨에스(이하 성진)는 자동차 가죽 시트를 생산하는 봉제공장이다. 코오롱글로텍이 가죽 카시트 생산라인을 사내하청에서 사외하청으로 분사한 코오롱 하청업체다.

성진이 201712월 최저임금인상을 이유로 노동자들에게서 밥값을 떼어가고 연차휴가를 공휴일로 대체하려고 시도하자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노조를 만들자 성진은 집단해고를 통보했다.

지방노동위원회가 부당해고로 판정했지만, 성진은 공장문을 닫아버렸다. 성진의 여성 노동자들은 16개월 동안 코오롱과 성진의 기획폐업을 규탄하며 싸웠다

 

 

폐업 당한 여성 노동자

[뭘 줘야 폐업을 안 하지? 다 줘야 폐업을 안하지!!] 일부

_ 시야 

 

사장은 2,000만 원 가져가다가 만 원만 덜 가져가도 적자라고 울어.

성진에서 18년 동안 흑자 난 적이 한 번도 없었어.

지난달에 2,000만 원 가져갔잖아, 이번 달에 만 원이라도 빠지면 적자야.

흑자는 없어.

우리는 뺏겨도 몰랐지.

여기 붙어서 일하니까 감사했지.

다 뺏기고서 이제 노조를 만들었어.

뺏길 것도 없을 때 노조를 만든 거야.

더 못 뺏어먹으니까 사장이 문을 닫어버렸어.

상여금도 뺏어가고, 학자금도 뺏어가고,

빵도 우유도 뺏어가고, 차비도 뺏어갔어

이제 밥값을 뺏을라고 해. 이제 연차휴가도 뺏을라고 해

우리는 일하고 싶어서 연차 15일은 뺏어가도

밥은 공짜로 먹겠다고 했어.

사장이 밥을 먹여주면 공장을 운영할 수가 없대,

밥값을 못 뺏어서 폐업을 시켜버렸어.

뭘 줘야 폐업을 안 하는 거야?’

다 줘야지.

사장 말은 법이었어.

우리가 반항하면 사장 얼굴이 막 붉어지면서 우리를 다 모아놓고 위협해.”


(중략)

성진의 여성 노동자들은 가죽을 재단하고 봉제해서 시트 완성품을 만드는 기술자들이다. 자동차 가죽 시트 만드는 일을 짧게는 10년에서 길게는 28년간 해왔다.

기술자라고 하기에 그녀들의 임금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10년을 일하나 28년을 일하나 최저임금을 4~5만 원 웃도는 수준이었다.

사장에게 그녀들의 노동은 마르지 않는 샘이었다

 

 

누가 내 일자리를 옮겼을까요_

 

여성 노동자들은 좌절을 딛고 길거리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공장이 문을 닫자 조합원은 흔들렸다. 공장 폐업하고 두세 달 만에 스무 명 넘게 떠났다. 마지막까지 남은 조합원은 열아홉 명이었다.

법과 제도는 원청인 코오롱에 폐업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그러나 코오롱의 물량만 담당했던 성진 씨에스가 하루아침에 문을 닫는다면 가장 타격을 받을 곳은 바로 코오롱이다. 코오롱은 마치 폐업을 기다렸다는 듯이 공장의 기계를 다른 하청업체로 옮겼다. 가죽 시트 생산은 중단되지 않았다. 지금도 미싱은 잘도 돌아가고 있다.

성진 씨에스의 갑작스러운 폐업을 코오롱은 갑작스럽지 않게 받아들였다. 사전에 조율이 있었다고 여성 노동자들은 의심했다. 성진 씨에스 여성 노동자들이 기획폐업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하루아침에 일터가 사라진 여성 노동자들이 찾아갈 곳은 코오롱밖에 없었다. 성진 씨에스가 폐업한 후로 여성 노동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서울시 마곡동에 위치한 코오롱 본사를 찾았다.

성진 씨에스가 폐업하면서 마주한 현실은 약탈적인 원하청 구조의 민낯이다. 가장 꼭대기에 위치한 현대기아차 정몽구 일가는 매년 수백억 원의 주식배당금을 챙기지만, 가장 아래층에는 2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만 겨우 받아 가는 중년 여성 노동자들이 있다. 양극화의 단면이다.

여성 노동자들을 가장 아래층에 놓은 것은 코오롱이다

 

 

성진 씨에스 조합원 인터뷰

[폐업이 지나간 자리] 일부

_ 하은

 

여진(가명) 님은 성진 재단실에서 오래 일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가 문을 닫아버리기 전까지는. 일하는 사람에게, 폐업이란 무엇인가? 문 닫는 것이다, 한꺼번에 잘리는 것이다, 수입이 끊기는 것이다. 이런 말들이 담아내지 못하는 여분들, 사람의 내면에 있는 풍경들을 만나고 싶었다. 폐업이 지나가는 자리에 서서, 그것을 통과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내가 여진 님을 만나기 시작한 건 이미 폐업을 하고 1년이 되어갈 즈음이었다. 성진 조합원들이 노동조합 남부지역 지회 사무실에서 다 같이 글쓰기 수업을 듣던 날.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는 여진 님의 첫인상이 오래 남았다. 여진 님을 보면 묵묵하다라는 말이 그려졌다. 작고 쓸쓸한 나무나 돌멩이 같다고 느꼈다. 기분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 표정, 천천히 느리게 꺼내놓는 말투, 그에 반해 바지런한 생활이 느껴지는 날랜 몸짓들. 지금껏 몰랐던 사람이지만 왠지 어디엔가 늘 있을 것 같은, 익숙한 느낌이다. 왜 이런 느낌이 들까. 그런 사람들이 늘 주변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도무지 가능할 것 같지 않게 부지런히 움직이고 일하는, 그런 생활이 쌓여 근육과 손 마디마디까지 단단해진 몸들이. 그런 사람들이 자글자글 모여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

내가 처음 느낀 여진 님은 그런 모습이었다. 15년 넘게 일한 일터에서, 집에서, 노동조합에서 늘 단단하게 버텨온 사람. 일하던 재단실 기계가 팔리고 사람이 절반 넘게 줄었을 때, 집에서 가장 역할을 해야 했을 때, 회사가 폐업하고 노조에서 대의원이 되었을 때. 모든 상황이 닥칠 때마다 피하지 않았다. 호들갑 떨지도 않았다. 그냥 묵묵히 할 일을 했다. “그냥 나는 뒤에서 뒷받침 같은, 그 정도만 해주는데.”

15년을 매일같이 집보다도 오래 머물던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갑자기 단절되는 것, 내가 통제할 수 없이 닥쳐온 상황들. 이런 경험이 한 사람에게 어떤 의미를 만들어낼까. 그저 괴롭고 억울한 고통과 피해의 시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까? 폐업 이전에 여진 님이 묵묵히 일하고 지내온 오랜 생활의 순간순간들이 궁금해졌다

 

 

* 어느 날 갑자기_

 

저는 회사를 힘들게 다녀서 그런가, 사실 후련하다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휴식, 은퇴, 여행…… 먼 이야기였다. 별일 없이, 사소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그저 눈을 뜨면 자동으로 일했다. 발끝만 보며 정신없이 내달리다 고개를 문득 들었을 때, 주변이 보인다. 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닌데, 왜 남들에게 쉬워 보이는 것들이 나는 이렇게 어려울까.

 

살다가 어느 순간에 보니까 그런 게 있더라고요. ……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지, 남들은 저 놀러 가요하고 자주 가는데 그런 얘기 들으면 부럽고.”

 

주변을 돌아보면 더 쓸쓸하다. ‘사는 건 뭘까고민하면 힘든 게 더 힘들어지기만 할 뿐이다. 다시 고개를 숙이고 일로 돌아간다. 코앞만 내다보는 게 버티는 방법이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가 폐업했다. 일상이 갑자기 끊어져버린다. 내가 고민할 겨를도 없이, 상황은 그렇게 코앞에 닥쳐왔다.

 

맨 처음에 폐업할 때는…… 너무 힘든 일에서 이제 해방감이 느껴져서. 맨 처음엔 좋았던 거 같아. 좋았는데. 좀 어느 순간 지나면서 약간…… 이제 취업을 해야 하는, 고민스러운 거예요. 불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