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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024년 9월 1일과 2일 서울변방연극제의 프로그램 중 하나인 [현지 가이드와 함께 하는 동아시아 맞춤 투어]의 제작비를 모금합니다.

  • 2024년 9월 1일 오후4시30분 & 9월 2일 오후7시30분
  • 010-2036-7770
  • platformc@proton.me
  • https://platformc.kr

후원이 마감되었어요. 그 결과..

'현지가이드와 함께 하는 동아시아 맞춤투어' 공연 후기

'현지가이드와 함께 하는 동아시아 맞춤투어'는 2024년 서울변방연극제의 공연 중 하나로 기획됐습니다. 플랫폼c는 기획단을 공개 모집했고, 이 공연의 뜻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3개월 간의 치열한 논의와 극작, 연습, 공연 준비를 통해 9월 1~2일 이틀간 공연을 치를 수 있었습니다. 실수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 공연을 치러냈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바가 커서, 이를 <메이킹북>으로 만들었습니다. 아래는 그 메이킹북 내용 중 일부입니다.

 

프로젝트 불똥의 공연 후기

 

말하고 싶으면 말해도 돼

송현

예술이나 학문은 나에게 대개 압도감을 주었다. 그앞에서 나는 주눅이 들었다. 신입생 때 학과 스터디에 갔는데, 사람들이 나름 평이하다고 말하는 러셀의 <철학이란 무엇인가>가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자괴감을 느끼면서 새벽까지 발제문을 썼다. 스터디에서 선배들은 물론이고 동기들도 내용을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 텍스트를 이해하는데 나만 중요한 걸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또 시나 소설을 읽으면, 또는 영화나 뮤지컬을 보면 그럴듯한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서 자주 겁에 질렸다.

지금 돌이켜 보건대, 나는 제도가 부여하는 권위를 지나치게 무서워했던 것 같다. 수업 시간에 교수님에게 반박당하는 것,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등, 아무튼 학계든 문단이든 평론계든 제도적 훈련을 통해 중심부에 위치하게 된 사람들의 기준을 맹신했고, 그들에게 권위를 부여했다. 2024년 <현지 가이드와 함께하는 동아시아 맞춤 투어>에 참여한 것은 나에게 여러 면에서 값진 경험이었지만, 무엇보다도 나에게 창작할 용기를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번 연극에 참여한 경험은, 잘하지 않아도 원한다면 얼마든지 말해도 된다는 용기를 주었다.

물론 <동아시아 맞춤 투어>에는 예술 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연극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분명히 제도적 훈련을 통해서 형성된 기준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준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만들어가는 “공동 창작”의 과정 자체, 축적한 시간 자체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느꼈다.

공연에 참여하면서 한국 사회, 동아시아, 전세계는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걸 감각하게 되었다. 내가 전혀 연결되어 있다고 느끼지 못했던 동아시아의 노동자, 활동가들과 세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그래서 우리가 서로의 삶에 대한 책임이 있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연결감이란 논리적으로 설명되기보다도 몸으로 마음으로 익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극이라는 매체의 특성상 내가 맡은 배역(폭스콘 노동자와 미얀마 시민)의 행동을 직접 구현하게 되고 단순하고 추상적인 방식이더라도 타인의 삶을 경험하게 된다. 그건 더이상 딱딱한 사실의 기술이 아니게 되고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고 그 짧은 순간 동안 내가 맡은 배역으로서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배우로서 내가 경험한 것과 유사하게, 세운홀에서 움직이는 몸들을 보면서 관객들도 먼 곳의 이야기와 사람을 만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사회운동으로서 예술은 특별한 지위와 성격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술 장 안에서도 차이가 있기야 하겠지만, 제도 안에서 중심부에 다가가고자 하는 예술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사회운동으로서의 창작을 하고 싶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설득하는 과정, 그리고 나의 생각을 다듬는 과정으로서의 창작을 알게 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이번 연극이 너무 좋았다.

 

동아시아 연대는 가능하다

영은

세계는 이데올로기와 지리적 환경을 넘어 서로 연결되어 동시다발적으로 변혁되어왔다. 게다가 동아시아 각국의 역사는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지배-전쟁-독재 정부라는 비슷한 억압의 모양을 공유하고 있다. 이번 연극을 위한 자료들을 읽고 토론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한국의 역사가 동아시아 전 지역의 이야기와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 다양하게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의 현재는 그 역사의 부산물과 함께 역동하고 있기에,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각국의 사례들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연극에 다 포함시키지는 못했지만, 동아시아 투쟁 현장 자료들을 접하면서 우리에게 강력한 영감을 주는 미래적인 인물들과 활동들, 사건들을 다양하게 목격했다. 배워야 할 것들이 계속 발견되었다. 또한 우리에게 다가올(혹은 적게는 이미 당도했는지도 모르는)수도 있는 억압의 조건들(한계 없는 디지털 감시 체계, 기후위기로 인한 산업 전환과 그에 따른 노동 조건 악화, 이주민 차별, 인종 차별, 전쟁의 위협)에 대해서도 계속 예감하게 되었다. 일어날 지 모르는 일들,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상황들에 대하여 생각보다 깊게 공감했다. 5장을 정리하다가, 관련 다큐멘터리인 <붉은 벽돌 벽 안에서(理大圍城 INSIDE THE RED BRICK WALL)>를 본 날은 정말로 무섭고 안타깝고 숨이 막혀서 소리내어 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 상황을 뚫고 나간 인물들을 고르고 그 이름을 부르고 그들의 인생을 깊게 들여다보려고 했는지 모른다. 이 두려운 예감에서 함께 벗어나는 상상을 하기 위해서. 동아시아 연대를 구체적으로 연상할 수 없는 이상에서 내 지인이 겪은 일을 함께 돕는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믿게 된다면, 어떤 변혁의 씨앗이 될지 모르니까. 그보다 동아시아 연대로 이 세계가 뒤집히는 일이 일어난다는 상상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들처럼 하루 하루 용기를 내기 위해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쩌면 나를 위해 이 연극을 한 것 같다. 2막의 니르와나 셀레 영상 편집을 생각보다 오래 붙잡으면서,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니켈 제련소 노동자들의 삶에 몰입되어 있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들은 정말로 틱톡을 즐겼다. 틱톡에 거의 모든 것이 다 있었다. 화재 현장, 화재 현장에서 생존한 당사자들이 안도의 포옹을 하는 장면, 화재 다음 날 재가 된 현장, 사측의 농간으로 노동자끼리 서로 욕하고 때리고 싸우는 장면, 파업을 준비하는 장면, 경찰과 사측을 상대로 시위하는 장면, 니르와나의 시체가 든 관을 동료들이 높이 들고 공장 안으로 행진하는 장면, 그 관이 무덤에 묻히는 장면, 니르와나 어머니가 인터뷰한 장면, 공장에서 일하다가 피곤해서 조는 장면, 불꽃이 크게 튀는데도 안전 장비라고는 헬멧 하나에 철 꼬챙이 하나 들고 거푸집에서 니켈을 떼어내는 장면, 공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한 틱톡 챌린지 등 그야말로 아무런 성역 없이 때로는 신나는 음악과 함께 그들 스스로 편집한 영상들을 보다 보니,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연습을 하면서도 우리가 보여주고자 하는 세계는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 연극은 대체 뭐지? 동질감과 이질감이 모두 극대화되는 느낌이었다. 니켈 제련소 노동자들과 나 사이의 거리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었는데, 더 구체화 할수록 사실 우린 정말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동시에 그 극심한 피곤함과 (일하다가 이대로 죽진 않을까) 두려움, 억울함, 분노도 점점 일어났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낙관하고, 투쟁해서 승리할 수 있다고 서로 응원하는 모습들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도 모르는 그들을 알게된 것 같았다. 마치 실제의 나와 니르와나 셀레 사이의 무언가를 만난 것 같았다. 7막 중간에 각 인물들의 사진 슬라이드가 나오는데, 바닥에 쓰러진 퍼포먼스를 한 채로 화면에 보이는 니르와나 셀레의 사진을 보았을 때, 그녀가 얼마나 낯설게 보였는지 기억한다. 완전히 막연하면서도, 니르와나 셀레가 그리웠다. 내가 알게 된 니르와나 셀레가 진짜 니르와나 셀레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그녀의 죽음과 그녀가 유령이 되어 우리와 함께할 수 있을 힘을 가늠해보았다. 가능한 일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연극이 우리를 위한, 나를 위한 창작 활동에 불과할 수도 있는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무대 위에 올려놓았고, 동아시아 주체들이 아닌 그 사이의 어떤 것을 우리도 관객과 마찬가지로 처음 만나는 것처럼 그렇게 마주쳤던 것이다.

그 경험이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이 그저 말이고 스펙터클이 그저 스펙터클임을 알기, 이것들은 어떻게 말과 이미지가, 이야기와 퍼포먼스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우리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어 개인적으로 작은 실마리가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언젠가 동아시아의 모든 주체들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이 체제를 변화시키는 데 동참하는 사건이 일어난다면, 만날 수 없었던 인도네시아, 홍콩, 미얀마, 중국의 동료들과 우리의 ‘사이’들이 모든 스펙타클을 뚫고 만나고 헤어짐을 반복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연극으로 모인 이유

승은

‘대체 왜, 연극이어야만 하는가’. 사실 연극의 한계는 분명하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로 와야만 볼 수 있으며, 그 마저도 그 순간에만 존재하고 사라진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연극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른 시대다. 영화에서 길게 가져갔던 호흡은 드라마에서 짧게 끊기고, 유튜브로 또 한번 짧아지고, 더 짧은 영상과 2배속 보기가 유행이 되어갈 즈음, 숏폼이 모든 것을 조각내었다. 심지어는 OTT의 등장으로 긴 호흡의 영화마저 원하는 순간에 손쉽게 멈추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는 이러한 흐름이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너무나도 쉽게 영상을 꺼버리는 것에 익숙해진 우리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다는 것 자체가 생경해져버린 것만 같다. 대화는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듣지 않으니 대화는 이어지지 않고, 타인을 이해하지 못한 채 영원히 타인은 타인으로서만 존재하게 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이런 시대라서 연극은 더 소중하다. 관객들은 연극을 만든 창작자과 일종의 ‘약속’을 한다. 당신과 내가 약속한 시간동안은, 당신이 만든 이야기를 듣겠다고.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관객들은 굳이굳이 시간을 내고, 약속을 하고, 공연장까지 찾아와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다. 이 문장의 맥락을 ‘대화’로 바꿔본다면 어떨까.

누군가는 다른 사람과 약속을 한다.
당신과 내가 약속한 시간동안은,
당신이 하는 이야기를 듣겠다고.

너무나도 쉽게 누군가의 이야기를 선택적으로 듣고, 듣지 않고를 선택할 수 있는 세상에서, 약속을 기반으로 세워지는 이 세계가, 그래서 더 필요하다고 믿는다. <현지 가이드와 함께하는 동아시아 투어>가 연극이어야만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자본과 권력에 가려져 지금까지 들리지 않았던 죽음과 목소리들을 무대에 세웠을 때, 이 무대를 보러 오겠다고 약속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에.

 

계속 나아가는 힘

경하

헤매는 줄 알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공연을 준비하며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현실 동아시아의 폭력과 저항을 재현하는 ‘투어’라는 건 무슨 의미이며, 그것을 왜 서울, 세운광장에서 해야하는지, 나는 어떤 마음으로 관객들을 ‘가이드’ 해야 할지, 그들을 극장 안에서 겨우 다섯 걸음쯤 이동시키며 동아시아 곳곳으로 데려갈 수 있을지에 관한 확신이 없었다. 이야기 바깥에서도 해소되지 않은 질문들이 많았다. 이를테면 연극에 대한 경험과 이해가 아주 다른 우리가 모여 공동창작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할 때, 내가 언제 어디까지 내 의견을 말하거나 개입해도 될 지, 함께하고 있는 이에게 얼만큼의 책임을 요구할 수 있는지가 늘 어려웠다. (이제와 돌아보자면 연극을 만드는 일은 사실 언제나 공동의 과정일텐데, ‘공동창작’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여둔 탓에 더 복잡하게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약속된 공연 날짜가 다가올수록 불안해하며 내내 갈팡질팡하는 여름이었다. 다른 많은 이들도 비슷한 마음을 붙들고 작업을 했다고 들었다. 분명 쉽지만은 않은 과정이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는 나를 포함해 그 누구도 그만두거나 폭발하지 않은 채 모두 같이 공연을 올리는 데 성공했고, 심지어는 다음을 함께 만들어볼까 하는 상상도 하게 되었다. 나는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했는지가 계속해서 궁금했다.

각자의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새로운 경험이 즐거워서, 믿을만한 동료들이 있어서, 마주한 이야기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우리 내부에서 만들어졌던 무언의 약속들을 지켜야 할 것 같아서…. 나에겐 뭐였을까 고민하다가 아직도 잘 알 수가 없어 묘연한 기분이 들었다. 이 글을 쓰려고 앉아서도, 뱉고 싶은 말은 별로 없고 머릿속에 물음표만 한가득 맴돌아 화면을 켜두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가 문득, 이 수많은 질문을 품고 있는 일 자체가 동력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헤맨다는 것은 새로운 곳에 당도하리라는 설레는 예감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목소리들을, 또 그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되면서 나에게 발생한 어떤 파격은 분명히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다. 그건 어디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또다른 듣기-말하기에 대한 기대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연결들을 발견하는 세계일 것이다. 이렇게 정신없이 휘말려버리는 가운데의 혼란이 어렵고, 어려워서 재미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연극이 좋았다고 확언하기보다 여전히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마음에 든다. 전에 없던 질문들을 만들며 나아가고 싶다. 연극이 끝나는 순간 모두가 각자의 집으로 흩어지는 외로운 결말이 아니라, 이게 뭐였을까 그 다음은 어디로 가야할까 하는 고민이 나에게도, 연극을 만든 사람들에게도, 보러온 관객들에게도 남았으면 좋겠다. 혼자 헤매야 한다면 덜 재미있을 것이다.

 

연결된 순간

지모

동아시아에 살면서 동시대 동아시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몰랐던 무지를 반성하며 참여를 결심한 작업이었다. 민주적인 방식의 공동창작으로 만든다는 점도 좋은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 좋은 작업이 되기를 바랐고, 거기에 필요한 역할이라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2막 연출과 다른 막에서의 출연을 맡았고, 공연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동아시아의 노동자 혹은 활동가들과 어떤 식으로 만나야 하는지 그 의미를 계속 고민했던 것 같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공연을 하면서 그들과 연결된 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생각이 언뜻 떠오르기도, 그 감정이 순간 스치기도 했다. 그래서 감사한 마음이다.

 

흔들리며 불화한 채로

나민

연습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어떤 순간이 형성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무언가가 지나간다. 또는 통과하고 있다. 이 생각은 모르던 것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으로 이어지며, 조명 빛이 빈 무대를 치고 가는 것과 함께 이어졌다.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공백 또는 허공의 자리에서 모르는 것들을 가늠했다. 연습하던 사람들은 저마다 어딘가를 바라보고, 단지 바라보는 것으로서 거기는 믿음을 갖고 장소가 되어 다시금 불려 나왔다. 아무런 공간이 형체를 가졌다. 위치와 시간을, 두께와 밀도를 가지고, 역동과 죽음을 가지고 여기의 사람들에게 나타났다. 그 순간들을 오래 바라봤다.

돌이켜보면 나는 임의의 역할들을 자주 많았다. 정확한 나의 역할을 가지고 반복해서 연습에 임하기 보다, 그때그때 빈 자리의 역할을 메우면서 여기 저기를 옮겨 다녔다. 나는 연기를, 기술을 익히기 보다 그 순간에 어떤 대사를 읽었는데 그 목소리에 내 목소리를 얹어 본 것으로도 몸의 감각이 다르게 굴러갔다. 발 딛고 서 있는 곳에서 어긋난 채로 맞물리는 동시들을 연습 내내 느끼면서. 연극의 바를 다하고 싶어서 난망을 부렸는데, 사실 무엇보다도 그냥. 가장 원했고 중요했던 것은 어긋난 목소리들을 듣고 싶었다. 목에서 나오는 전혀 다른 말. 삶을 앞지르는 죽음에 대해서 말하기. 이게 아는 말로 들어봄직한 말로 쇠하지 않길 바랐다.

몇 번이고 울었다. 되풀이해서 나오는 눈물은 전혀 다른 이유로, 알던 경로로 감정이 흐르는 게 아니었고 그런 몰입 말고 쪼개지는 돌발 속에서 전혀 다른 감정으로 몸과 함께 휩싸였으면 했다. 내가 자주 연습을 하며 그런 몸으로 있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하나 이상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오싹하길 바랐다. 때때로 우리의 목소리가 신문 기사나 ‘뉴스데스크’를 연상하지 않길 바라면서 목소리를 들었다. 왜냐하면 목소리란. 연극의 목소리란. 익숙하게 넘길 수 없는 것으로. 언제나 앞에 서 있는 형형한 몸과 함께 오는 것이기에. 따라서 몸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에서 혼란하고. 친연성을 잃고. 흔들리며. 불화한 채로 몰입하길 바랐다.

 

도대체 어떻게

은주

다시 생각해봐도 참 재밌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연극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때에 맞춰 연극 구성원 모집 공고가 올라온 것, 가벼운 마음으로 간 첫 번째 워크숍에서 초면인 사람들에게 나의 가장 최근의 비극(!)을 이야기한 것, 그 이야기가 눈 앞에서 바로 즉흥극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것, 그 즉흥극을 보고 깊은 위로를 받은 일까지. 그래서 들떴고, 기쁜 마음으로 확신했다. 생애 첫 공동 창작을 함께할 좋은 동료들을 만났다고. 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았고, 주제는 어려웠다.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죽어간 사람들, 탄압과 감시 속에서 메말라 쓰러진 사람들, 실제하는 위협에 맞서 목소리를 내다 사라진 사람들이 우리의 주제였다. 여기서 나의 실수는, 주제의 무거움을 모르고 무작정 덤볐다는 것이다. 하지만 잘한 일 또한 그것이다(!)

첫 워크숍 전 신청 링크를 작성할 때, 극작팀에 지원했다. 배우, 연출, 극작, 기획 중 내가 그나마 잘 할 수 있는 것을 고른 것이다. 그리고 극에 쓰일 사건들에 대해 빠르게 공부했다. 공부할 때의 기억은 벌써 희미해졌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기억난다. 이게 이미 현실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밤샘으로 피곤한 와중에도 혼란스러웠다. 이미 일어난 일이라니.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니. 사람이 불 속에 갇혀 있다가 아무 도움도 못 받고 죽었다니. 사고 없이 죽은 이들도 있었다. 일을 하다가 하다가 죽은 사람들. 대체 어떤 마음으로? 이들의 일상은 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을까.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야할까. 내가 이 사건들로 감히 ‘이야기’를 만들어도 될까. 관객에게 잘 전달이 될까.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답 없는 문장들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하지만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았고,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주축으로 극작팀은 생각보다 빠르게 대본 초고를 완성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2막은 빠질 가능성이 많은 막이었다. 이 주제에 이 연극에 틱톡이라니? 잘 생각도 안됐고 연결도 안됐다. 근데 또 어쩌다보니 내가 2막의 주연을 맡게 됐다. 와, 인생 정말 모를 일이다!

내가 2막의 주연을 맡게 된 건 순전히 팀원들 덕분이다. 때마침 나의 몸 상태가 좋았고, 그래서 리딩을 재미있게 할 수 있었고, 그 모습을 팀원들이 좋게 봐주었다. 그래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춤… 춤이 가장 큰 문제였다. 관객들 앞에서 갑자기 등장해 춤을 춘다고? 오, 마이… (이하 생략)

내가 도대체 어떻게 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을까? 아주 운이 좋은, 슬픈 여름이었다.

 

회고와 발견

유진

1. “울면서 연습 간다”
어떤 배우가 이렇게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연습 갈 때마다 어떤 울분이 차오르고 고통스럽다면서. 그 말을 들었을 땐 이해하지 못했는데, 올 여름에 나는 속으로 울면서 연습에 갔다. 도대체 뭘로 구성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는 안개를 피부로 닿아가며 한 발씩 나아가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면 공연날이 되어 사람들이 시간을 내 우리를 보러 온다는 그 계시록 같은 무서운 사실이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라는 회피형의 평생 염불을 이겼다. 그 원초적 두려움, ‘사람들이 보러 온다’는, “쪽팔림”에 대한 회피가 일에 대한 회피보다는 강한 걸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끝까지 작업을 완성할까? 홍보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은 저당잡히는 것이다. (나는 홍보물을 리포스트하는 걸 최대한 미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작업이 있을까? 중간에 포기하는 것보다 뭐가 되든 일단 이어가는 게 훨씬 어렵고 용기있는 일이다. 사람들이 공동 작업을 하며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어떤 걸까. 판단받고 싶지 않은 마음, 통하지 않는 것 같은 대화, 답이 정해져 있는 토론, 결코 오지 않을 것 같은 완성의 순간, 끝없는 ‘다시’와 기다림, 손과 발로 해 치우지 않는 한 일은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단톡방…

2. 연극을 이해하기
‘붙이고 떼는’ 장면을 연습하려면 똑같이 ‘미리 붙이는’ 작업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배우가 ‘그리는’ 장면을 연습하려면 미리 ‘지우는’ 작업을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 경우엔 시간이 배 이상으로 더 든다. 연습하는 만큼 ‘연습을 위한’ 준비작업도 는다. 모든 세팅은 단축키를 눌러 실행 취소↔︎재실행하듯 쉽게 원상복구할 수 없다. 연극의 모든 행위는 그것이 ‘무대 위, 극 속’ 행위이건 ‘무대 밖, 극 밖’ 행위이건 관계없이 행위 자체만큼의 정직한 시간이 필요하다. 이걸 납득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의자는 어느 타이밍에 누가 넣는가? 그리고 언제 빼는가? 펜과 책은 누가 언제 어디에 두는가? 누가 빼는가? 빼지 않는다면 그대로 다시 프리셋인가? 아니다, 겉모습은 그대로더라도 한번 “만져지고” 나야 프리셋이다. 그럼 그건 누가 언제 하는가? 연극은 구획화되지 않은 노동들에 하나하나 이름을 붙이고 분담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영화를 찍을 때처럼 그냥 “손 남는 촬영팀” 아니면 “가까이 있는 연출팀”이 “눈치껏 해줘”가 불가능하다. 그건 영화의 방식이다. 연극에서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빈 곳이 생긴다. 영화에서 너무 “사소해서” 굳이 미리 정해두지 않는 행위는 연극에서 자칫하면 큰 재앙을 초래하는 부재, 혹은 존재로 일어나 보여질 것이다. (부재보다 존재가 더 티난다. 누군가 제 때 빼지 않아 빈 무대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의자를 생각해 보라.)

3. 좋은 걸 먼저 말하기
사람들은 아프고 약하고 늦고 잊고 산만하고 대개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다. 그런 열일곱 명이 세달 간 집중해 뭔가를 만드는 건 쉽지 않았다. 그보단 [최초의 호기로운 2명 + 오지랖 넓은 3명 + 그제의 건강한 4명 + 어제의 상태 괜찮은 3명 + 오늘의 성실한 4명 (…) ]의 조각들이 하루하루 모여 공연이 완성됐다고 하는 게 더 맞겠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서로에 대한 정보나 친밀감을 쌓을 시간은 거의 없이 동아시아 불복종 관련 세미나, 워크숍 등을 바쁘게 거쳤다. 나는 평소 소위 “인간적인” 것, 관계나 분위기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하는 교류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편이라, 만나게 된 동료들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일로 힘들어하는지, 나와는 어떤 게 같고 다른지 알려고 노력하지 못했다. 연습의 강도와 밀도가 높아지면서 우리가 지쳐간다는 게 눈에 보일 만큼 느껴질 때, 옆의 동료가 굳이 말로 하지 못하는 사정이나 마음까지 살피고 챙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동료들의 말 한 마디에 숨이 트이기도 했다.
연습 때 나는 유독 부족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영상은 안 나오고, 소리는 늦는데? 털실은 왜 엉키지?” 같은 생각들만 가득했다. 여느 날처럼 “여기가 비어 있어요, 너무 길어요, 그걸 쓰면 이상할 것 같아요” 라며 지적만 늘어놓았는데 “좋았던 것도 알려주시면 보완하기 좋을 것 같아요”라는 말을 들었고 너무나 부끄러웠다. 단점만 보는 건 가능성을 차단하기만 하고 어떤 방향도 제시하지 못하는 태도였다. 연습에 빠짐없이 참여는 하면서, 내가 과연 우리 연극이 가능하다는 걸 믿고 있었나? 내가 정말 우리를 지지하고 있는 게 맞나? 한 번의 테이크(take), 한 번의 런스루, 한 번의 공연에서의 분절된 각 요소들을 모두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았다. 사후(?) 기술적으로 일부 조절이 가능한 영상과 같은 매체에 익숙했던 탓일까? 나는 사람의 몸이 직접 일으키는 고유한 한 번씩의 해프닝이라고도 할 수 있는 연극에 처음으로 참여하면서 마치 영화 포스트프로덕션에서의 색보정을 하듯 접근하고 있었다.

4. 시간 탓하기
하예르니샤한과 엘리 배역을 젠더프리 캐스팅으로 할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시간이 촉박해 충분히 열어두고 하지 못하고 넘어간 것이 아쉽다. 젠더프리 캐스팅을 고민했던 이유는 전체 막에서 유독 하예르니샤한과 엘리의 이야기가 두 헤테로 연인의 전통적인 결혼, 출산, 육아 서사로 시작된다는 점, 그리고 두 증언자에 대해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비교적 부족하여 새롭게 무대화할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는 점 두 가지 정도였는데, 모두에게 의견을 개진하고 충분한 피드백을 듣고 반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기도 했고, 실재하는 증언자들의 이야기를 무대화함에 있어 새로운 (연출적)시도가 꼭 필요한 것인가? 연출적 욕심일 뿐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어 젠더프리 캐스팅은 하지 않았다.
또 연습과정에서 계속 소모되는 털실을 구입하기 위해 연습장소인 세운홀의 지척에 있는 을지로 상점가를 두고 편리하고 빠르다는 이유로 쿠팡 등 인터넷쇼핑을 수차례 이용했던 것이 아직도 걸린다. 모든 것을 미리 준비하고 좀더 먼저 고민해보지 못한 탓으로 돌리고 있지만, 다음 기회가 있다면 연습 과정과 그 전반에서 좀더 지속가능하고 윤리적인 소통 과정과 소비를 하도록 노력하고 싶다.
공동창작은 아래의 질문들로 만들어진 캣휠 안에서 도는 것과도 같았다.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나?
어디까지 개입해도 되나?
얼마나 안 개입해도 되나?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어디까지 말해도 되나?
얼마나 요구해도 되나?
얼마나 할 수 있나?

우리는 이 작업을 마무리하고 피드백을 나누는 자리에서 “우리의 이번 공동창작은 이번만 가능했던 방식인 것 같다”는 말에 동의했다. 공동창작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용감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메이킹북을 통해 한 번뿐이었던 이번 공동창작 방식에 대한 충분한 회고와 발견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어두운 밤의 빛나는 얼굴들

베로

“플랫폼c 문화소모임 ‘오프라인’에서 함께 공연을 기획하고 만들어나갈 친구를 찾습니다. 동시대 동아시아의 구체적 현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지금 나 혹은 우리에게 필요한 목소리와 제스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오는 9월, 서울변방연극제에서 ‘연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우리의 생각과 상황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아직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이 공연 워크숍은 국적을 막론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일련의 과정을 통해 ‘공동 창작’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으며, 반드시 한국어를 잘 하지 못 해도 괜찮습니다. 조건은 하나, 매주 1회 정도 시간을 내어 공연 준비 과정을 함께 합니다.
플랫폼c는 기후정의운동과 동아시아 국제연대, 반전평화운동, 체제전환운동, 억압받는 이들과의 연대 등을 통해 사회운동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나아가 책읽기모임과 월례포럼을 통해 우리 안의 활력을 만들어가는 한국의 사회운동단체입니다.”

위의 글은 참여자 모집 홍보 문구이다. 참여자 모집을 홍보할 때만 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30명)이 신청할 줄은 몰랐다. 신청서에 신청 동기 및 기대하는 바를 적는 칸이 없었다. 1차 워크숍을 준비하자니 신청동기가 너무 궁금했다. 기획단에 신청자들에게 일일이 전화해볼 것을 제안하고 명교님과 나눠 모든 신청자에게 연락을 했다. 통화를 하며 예산이 300만원이라는 이야기도 흘렸다. 신청자 중 일부가 연극 연출, 배우 전문가였고 대부분이 연극 창작과 동아시아의 연대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또한 대부분 플랫폼씨를 들어봤거나 알고 있었고, 플랫폼씨에 대해 호의적인 관심을 갖고 신청하였다. 책임감을 덜컥 느꼈다. ‘연극의 내용이나 표현 방법은 다른 기획단 구성원과 참여자의 논의와 결정에 무조건 맡기자’라고 판단하게 되었다. 대신 공동창작이 쉬운 것이 아니므로 공동창작에 있어 결정적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지점에 발언하고 필요한 절차를 진행하는 것에 집중했다. 최소한 참여 신청자는 모두 무임금으로 이 연극을 만들어가게 될텐데 이 일을 하는 과정이 어려움과 한계는 있지만 각자의 기대에 어느 정도 부응하기를 바라며.
기획단 회의, 워크숍 진행, 연습 및 논의를 이어가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참여자들이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은 많았고 공연 날짜는 다가오고 있었다. 한편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문득 ‘이렇게 까지 해서 무엇이 남을까?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만 정신 차리고 잘하면 되는 상황이 연신 닥쳤다. 공연을 마치고 한달 정도 지나서야 우리가 만든 연극/문화의 가치를 머리로는 조금 더 이해하고 확장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연극을 만든 시간이 개인적으로는 특별한 전환점이 될 것 같다. 나의 무른 마음을 보게 한 시간이었고, 무려 연극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조금 더 알게 된, 귀하고도 귀한 시간이었다. 부족했던 내가 함께한 이들에게 섭섭하게, 아쉽게 한 일도 많을 거다. 함께한 이들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전했지만 또 전하게 된다.
관객은 동아시아의 동시대 민중이 겪은 문제들로부터 자신의 문제를 다르게 볼 수 있는, 좋은 창을 얻어 갔을까? 지금 내가 보는 창 밖으로는 어두운 밤이지만 빛나는 얼굴들이 새겨졌다.

 

연극과 투쟁

명교

연극은 언제나 흥밋거리였지만,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고 높은 무대처럼 느껴지곤 했다. 기질상 무대에 서는 것은 언제나 낯설었고, 무대를 만드는 일을 생각하기에 연극이라는 예술은 너무 형식적인 허들이 높은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 연극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러던 내게 “이 또한 연극이 아니고 뭘까”라고 생각하게 된 몇 번의 계기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2011년 5월, 돌곶이에서 이것저것 도모하고 놀던 나와 친구들은 ‘쓰레빠음악회’라는 행사를 기획했는데, 신이문역 1번 출구 앞 공터에 모여 지역주민과 학생들이 누구나 쓰레빠 질질 끌고 참여할 수 있는 음악회였다. 공연자로는 그 동네 언저리에 거주하거나 어슬렁거리는 우리 또래의 젊은 음악가들이 있었는데, 회기동단편선, 하헌진, 이류, 악어들, 소프트크림, 무키무키만만수 등이 그 출연진이었다. 그것은 음악회였지만 동시에 모종의 연극적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소비주의로 일관된 문화 행사에 대한 도전이었고, 인디음악과는 동떨어진 듯한 그 동네에 쏘아올린 작은 폭죽이었다. 돈은 거의 쓰지 않았지만, 작은 해방의 기획이라고 느꼈다. 공연 도중엔 연극적인 행위들이 펼쳐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2011년의 우리에게 그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2012년 노동절을 맞아 청년학생투쟁문화제를 기획할 때, 이 문화제를 함께 만든 우리들은 전통적인 민중가요 몸짓 공연과 노래 공연으로 이뤄진 서너 시간짜리 야간 문화제에 스토리텔링을 부여하고, 공연 사이마다 몇 분짜리 극을 배치했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달라졌고, 문화제 전체를 관통하는 서사가 생겼다. 부지불식 간에 그것은 이미 연극이었다. 동시에 집회였고, 투쟁이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이후, 한국 사회의 풍경은 달라지고 있다. 어떻게 사회가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 있느냐는 절망, 그럼에도 광장을 밝게 비추는 빛깔들이 전하는 환희, 악무한을 거듭하는 혼돈, 경계를 모르고 흩어지는 제도와 규범까지. 눈발이 내리치는 한남대로에서 연단 위에 선 몇몇 발언자들의 우발적인 격정은 차라리 연극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한데 데모 경력 20년이 넘은 활동가의 경험에서 생각해보면, 대중시위에는 어떤 패턴이 있다. 나는 그 반복적이고 긴 패턴에 우발적 사건이 일어나길 바란다. 가령 광장이 지리멸렬해진 즈음 쉬리즈나 하예르니샤한의 울부짖음이 들어올 틈은 없을까? 물론 ‘혐중 선동’과 가짜뉴스가 팩트마저 뒤집어 엎는 지금의 형국에 세상은 그 반대로 가는 것만 같지만 말이다.

천만다행으로 지난 9월 우리에겐 <현지가이드와 함께 하는 동아시아 맞춤투어>가 있었고, 그것은 각자에게 강렬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겨졌다. 광장이 초라하고 위축되는 어느 순간에 이 공연이 우리에게 힘을 주리라 믿으며, 그 힘을 기억하고 싶다. 침통하게 비관에 빠진 우리 모두를 향해 쉬리즈와 야마사토 세츠코, 니르와나 셀레, 제야 또우, 마까와이, 하예르니샤한의 울부짖음을 들리게 할 수 있다면. 뒷걸음질 치며 사회를 붕괴시키려는 세태를 향해, 오늘이 바로 어제 그들이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로인해 우리들의 해방이 그들의 해방과 연결될 수 있다면. 비관에 빠지지 않고, 새로운 광장을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과 함께 공연을 준비하면서 스스로를 많이 돌아보고, 부족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거대 서사만 생각하는 못된 버릇을 끝내야겠다고도 생각했다. 이것만으로 내겐 엄청난 격변이다. 함께 한 멋진 사람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지금껏 그려지지 않았던 동아시아

필목

나는 연극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법 집요하게 우리가 바라보는 동아시아가 어디이며, 어디까지인지 질문해왔다. 몇 번의 스터디를 거치면서도 그 질문은 해소되지 않았고, 나는 매듭지어지지 않은 질문을 품고 연극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7막의 연출이면서 동시에 1막의 폭스콘 공장 노동자 쉬리즈를 맡은 배우였다. 1막에서 나의 대사는 시였다. 쉬리즈가 직접 쓴 시만으로 구성된 대사를 외치고, 쉬리즈가 추락하면 나는 떠도는 자가 되어 6막이 끝날 때까지 무대를 떠돈다.

무대를 천천히 떠돌며 나는 듣는다. 2막 니르와나 셀레 친구의 울부짖음을, 3막 야마사토 시게코의 목소리를, 4막 제야 또우의 랩을, 5막 마까와이의 편지를, 그리고 6막 하예르니샤한의 노래를 듣는다.

그 모든 것을 듣고 나는 지금껏 그려지지 않았던 ‘어떤’ 동아시아의 모습이 드러남을 발견했다. 그 상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세계 지도만큼 명료하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종족과 국가라는 구획을 넘어 형성되어 있었다. 진원이 다른 파동들이 끝내 어딘가에서 교차하듯, 동아시아는 만나고 있었다.

 

이 후원함에 대하여

프로젝트 팀 소개

〈프로젝트 불똥〉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 회원들과 이 공연의 취지에 공감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연극 프로젝트팀입니다. 2024년 5월부터 기획단 모임이 시작되었고, 이후에 참가 신청을 받아 2024년 7월 4일 첫 번째 워크숍을 시작으로 총 17명의 구성원이 지금까지 매주 2회 이상 모여 연극을 만들고 있습니다.

플랫폼C는 사회운동 혁신과 연결을 위해 함께 공부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동아시아 국제연대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실천해왔습니다. 그 외에도 투쟁하는 노동자와의 연대, 기후정의, 반전평화, 페미니즘, 체제전환운동 네트워크 등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웹사이트 보기

 

동아시아에 대해, 연극으로 이야기하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아시아를 제각각 다르게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지리적으로 구분하고, 또 누군가는 문화적으로 구분합니다. ‘동아시아’를 구획하는 방식 역시 역사적으로 혹은 그것을 호명하는 주체에 따라 다릅니다. 우리에게 ‘동아시아’는 세계를 보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이는 우리 연극의 중요한 주제이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동아시아의 어떤 이야기들을 매개로 우리의 상황, 우리의 억압을 새롭게 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함께 국경과 인종, 민족을 경계로 바라보던 시각을 벗어날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지금까지 플랫폼C에서는 동아시아를 주제로 공부모임, 글 생산, 뉴스레터 발송, 도서 발간, 행사 개최 등을 해왔고, 이번에는 연극 공동창작이라는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나고자 합니다.

 

공동창작을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를 실험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는 ‘공동창작’이었습니다.

‘공동창작’은 창작 방법으로서도 지향되지만, 이념으로도 지향됩니다. 그것은 여기 모인 우리뿐 아니라 우리와 같은 억압에 처한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이 과정을 통해 연극뿐 아니라 세계를 같이 만들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며, 우리가 공동으로 추구할 만한 이념을 지향한다는 뜻이기도 하고, 우리가 아마추어 연극을 추구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홍보물만 보고 모인 이들이 어떻게 두 달간 하나의 공연을 만들 수 있을까? 우리도 그것이 궁금했고, 할 수 있는 만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는 플랫폼C의 기획단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기획단이 처음 예상하고 계획했던 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의 여정은 끊임없는 논의와 조율, 책임과 위임, 역할 분담, 계획 수정 등을 거치고 있습니다. 이 과정은 어떻게 마무리될까요? 그 결과를 공연과, 펀딩 리워드로 드리는 메이킹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공연은 무료로, 9월 1~2일 열립니다

2024 서울변방연극제에서 상연되는 이 공연은 일종의 투어입니다. 참가자들은 가이드들의 안내에 의해 중국 광둥성의 폭스콘 공장,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섬의 니켈제련소, 오키나와 이시가키섬의 미사일 기지, 미얀마 양곤의 게릴라 투쟁 현장, 홍콩의 교도소,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재교육수용소 등에서 벌어진 사건과 인물의 어떤 장면을 함께 목격합니다.

이를 통해 동시대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억압이 희미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인지합니다. 이 공연은 투어객들의 작은 참여를 통해 완성되며, 우리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신호를 통해 공연장 밖으로, 세상 밖으로, 단절된 경계 밖으로 나아갑니다.

이번 공연은 공연장 대관 조건으로 인해 관람료를 받지 않습니다. 이로 인해 부족한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여러분의 후원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공연을 관람해주신(관람해주실) 여러분, 그리고 이번 공연의 기획을 지지하는 여러분의 많은 후원 부탁드립니다.

  

공연 제작비를 후원하는 분들에게, 공동창작 과정을 기록한 메이킹북을 드립니다

  • 2만원을 후원해주실 경우
    • <현지 가이드와 함께 하는 동아시아 맞춤 투어> 메이킹북을 드립니다. 메이킹북에는 공연 대본과 프로젝트 진행 과정, 회의록, 막별 연출의도와 고민, 구성원들의 진솔한 후기가 담깁니다.
  • 3만원을 후원해주실 경우
    • <현지 가이드와 함께 하는 동아시아 맞춤 투어> 메이킹북에 더 하여, 우리 공연을 가로지르는 동시대 동아시아의 사건을 연결하는 대형 지도를 드립니다.
  • 5만원을 후원해주실 경우
    • 메이킹북, 동아시아 사건 지도에 더 해 특별한 선물을 하나 더 드립니다. 

본 후원의 리워드는 11월 중에 발송됩니다.

제작 | 프로젝트불똥 X 플랫폼C
공동창작 및 출연 | 권나민 박이현 박현지 박희수 백경하 베로 양지모 여영은 연빈 오승은 이유진 임솜이 장현영 차송현 최은주 한받 홍명교

조명 | 서가영
무대 | 박동규
포스터 | 박나혜
음악 | 옥과
오퍼레이터 | 김호정 보노 최세윤 

프로젝트 불똥

프로젝트 불똥

프로젝트 불똥은 사회운동단체 플랫폼C 회원들과 이 공연의 취지에 공감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연극 프로젝트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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