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표액 9,000,000원 중 7%
- 675,000
- 후원 마감
- 23 명 후원
- 이 후원함은 2015-11-13에 종료되었습니다.
-
- 후원마감
일하는 모든 이들의 연대를 위해 전태일의 고향, 대구에서 그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고자 합니다. 불꽃의 삶을 산 전태일이 다시 우리 곁에 옵니다.“대구불꽃, 전태일을 상상하라!"
이 후원함에 대하여
“대구불꽃, 전태일을 상상하라!”
아름다운청년 전태일 45주기 대구시민문화제를 시작하며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貧)한 자는 부(富)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 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 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 전태일의 작품 초고 부분, 1970년 초
전태일, 우리 모두의 가슴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청년입니다. 그에게는 푸른 옥과 같은 청옥(靑玉)의 시절이 있었습니다. 1963년 5월, 열다섯 살의 전태일은 당시 대구명덕초등학교 안에 있던 ‘청옥고등공민학교’에 입학합니다. 고등공민학교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던 아이들이 다녔던 학교였습니다. 전태일은 훗날,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청옥의 시절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청옥학교의 같은 반 친구들과 아령과 역기를 들고 앞산비행장까지 마라톤 연습을 하고, 아버지의 재봉 일을 돕고, 벽에 써 붙여둔 영어단어를 외우고, 아침에 세수할 때는 코피를 쏟고는 했습니다. 전태일의 아버지는 체육대회 날, 전태일과 그의 친구인 원섭, 제철이한테 같은 모양의 ‘빤쓰’를 만들어주고는 꼭 일등하기를 당부하였다고 합니다. 청옥학교 체육대회 날, 여학생들 앞에서 삼총사 가운데 한 친구인 제철이가 맘보춤을 출 때는, 배가 아프고 눈물이 날 정도로 우스웠다고 합니다. 그의 웃는 모습이 눈앞에 환합니다. ‘그늘에서 그늘로’ 옮겨 다닌 전태일에게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습니다. 그곳이 대구였습니다.
1970년 11월 13일, 아침부터 하늘은 잿빛이었습니다. 오후 1시 30분 무렵,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시키지 말라!” 자기의 몸을 태우며 그가 외쳤습니다. 청옥 시절의 동창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10시, 신생의 별이 되었습니다.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운명하기 직전에 서너 명의 친구들을 그의 머리맡으로 불러 놓고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그가 당부합니다.
이제 45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의 절규와 간절한 부탁은 아직도 우리들 귀에 쟁쟁합니다. 희망은 없고 전망은 어둡습니다. 사는 기쁨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에겐 지금 기댈 언덕이 필요합니다. 청옥의 그가 환한 웃음으로 화답합니다. 우리 모두가 등을 기댈 큰 언덕으로 그가 우리에게 다시 옵니다. 우리가 불렀기 때문에 그가 오는 것입니다. 청옥의 꽃 시절을 보냈던 대구가 그의 아름다운 이름을 불렀기 때문입니다. 대구의 불꽃, 전태일이 다시 살아나 우리에게 외칩니다.
“청년이여, 상상하라!” “노동자여, 상상하라!” “여성이여, 상상하라!” “비정규직이여, 상상하라!” “백수여, 노인이여, 주부여, 이주노동자여, 상상하라!”
2015년 11월, 우리가 다시 전태일입니다. 우리가 푸른 옥 같은 꽃 시절의 전태일이 되어야합니다. 아름다운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정신은 더 낮은 자리로 내려와 더욱 깊어지고 더 넓어져야 합니다.
해고와 실직의 불안은 더욱 깊어가고,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청년들의 삶은 마른 꽃처럼 시들어 갑니다.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1970년의 또 다른 전태일이 되어 유령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성장과 소비만을 위해 줄달음치는 세상에서 인간노동의 존엄과 가치는 어디로 갔느냐고 그가 울며 멱살을 잡고 우리들에게 따져 묻습니다.
삶을 위한 노동, 일하는 모든 이들의 연대를 위해 전태일의 고향, 대구에서 그의 이름을 다시 불러보고자 합니다. 불꽃의 삶을 산 전태일이 다시 우리 곁에 옵니다. “넘어진 자, 쓰러진 자여, 청옥 같은 나를 짚고 일어나라”고 그가 독려합니다. 그의 고향이 대구입니다.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몫은 그를 마음껏 상상하는 일입니다. 자신의 존재를 발판 삼아 꿈을 향해 나아가는 일이 ‘어떻게 상상할 것인가?’에 달려있습니다. 여기에 노동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자식들과 부모들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11월, 그가 옵니다. 대구의 불꽃으로 다시 옵니다. 거대한 상상의 불꽃으로 마침내 그가 옵니다.
“대구불꽃, 전태일을 상상하라! 상상하라! 상상하라!”
아름다운전태일 45주기 대구시민문화제 추진위원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대구시민문화제 추진위원회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대구시민문화제 추진위원회'는 전태일의 고향 대구 시민이 그의 정신을 알리고 기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여 결성했습니다. 대구는 권력자와 자본가의 고향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에 저항하여 인간의 존엄과 노동의 권리를 선언한 전태일의 고향입니다.
- newsmin@newsmin.co.kr
- https://goo.gl/3dnw4Q